'두 세계를 잇고 싶었어요' — 상상의 항공사를 만든 열다섯 소년, 그가 지금 나는 하늘

'두 세계를 잇고 싶었어요' — 상상의 항공사를 만든 열다섯 소년, 그가 지금 나는 하늘 · Avonetics
한 신앙 공동체 게시판에 짧은 질문 하나가 올라온다. '루카복음 17장 11절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질문자는 성서학자 존 클로펜보르크의 논문을 읽던 참이었다. 문제의 구절은 이렇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셨다.' 학자의 결론은 도발적이다. 이 여행 경로는 지도 위에서 어색하며, 복음서 저자가 그 지방의 지리를 잘 몰랐다는 것이다. 댓글창은 곧 조용한 성경 교실이 된다. 한 댓글 작성자는 1세기 지도를 내밀며 반박한다. 그 시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의 땅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죄로 여길 만큼 반목했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으로 순례 가던 이들이 사마리아 땅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까지 기록했다는 것. 그러니 순례자들이 사마리아 한복판 대신 국경을 따라 에둘러 갔다는 서술은 틀린 지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시대를 아는 사람만 쓸 수 있는 정확한 지리라는 얘기다. 또 다른 이는 그리스어 원문을 편다. '디아 메손' — 사이를, 그 어름을 지나. 원문은 애초에 측량 보고서가 아니라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사이의 넓은 지역을 지나셨다는 담담한 서술이며,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자면 누구든 지나야 하는 곳이 바로 그 지역이라고 짚는다. 세 번째 목소리는 한 걸음 물러선다. 복음서는 연속 여행기가 아니라 장면들의 모음이라고. 순서대로 지도를 그리려 들면 어느 복음서든 하루에 호수를 몇 번씩 건너는 셈이 되니, 각 장면이 전하려는 것은 경로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흔한 성경 문답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한 추모 방송에서 뜻밖의 울림을 얻는다. 'Benjamin을 기억하며'는 하늘을 사랑했던 소년 벤자민 보를 기억하는 프로그램이다. 벤은 비행기를 사랑했다. 가족 나들이에서 항공 전시관 조종석에 앉아 조종간을 잡고 조용히 집중하던 아이, 어린 동생과 나란히 빨간 털모자를 쓰고 상상의 비행을 떠나던 아이. 스스로는 '그냥 컴퓨터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게임과 앱과 항공 사진 갤러리를 만들고, 자기 세계의 두 반쪽을 잇겠다며 '상상의 항공사'까지 세운 소년이었다. 경계의 길을 일부러 걸으신 예수님, 그리고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고 싶어 했던 소년. 이번 에피소드는 그 두 여정을 겹쳐 놓는다. 서로 미워하는 두 지방 사이의 국경길은 버려진 길이 아니라 사랑이 가장 낮게 흐르던 길이었고, 비행기를 올려다보던 소년의 눈은 이미 위를 향해 있던 마음이었다는 것. 벤의 가족이 만든 추모 사이트에는 특별한 페이지가 있다. '천국의 가장 친한 친구' — 성 카를로 아쿠티스. 컴퓨터와 성체를 사랑했고 성체의 기적을 알리는 웹사이트를 직접 만든 밀라노의 소년은 2025년 첫 밀레니얼 성인이 되었다. 신앙과 컴퓨터를 같은 숨으로 사랑했던 두 소년, 어린 나이에 하늘 본향으로 불려간 두 영혼이 지금 함께 걷고 있다고 가족은 믿는다. 사이트의 기도의 벽에는 이미 8,050개의 촛불이 켜졌다. '벤, 우리는 네가 너무나 그리워. 너 없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게 도와줘.' 한 기도는 그렇게 시작한다. 또 다른 기도는 잠 못 드는 어머니를 위해, 남은 가족의 힘을 위해 벤에게 전구를 청한다. 벤을 기억하며 봉헌된 미사의 강론은 코린토 2서의 한 구절을 편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담고 있습니다.' 연약한 질그릇 같은 삶이지만 그 안에 하늘의 보물이 담겨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시편의 약속.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국경길 논란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렇게 위로로 끝난다. 지도가 흔들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길의 마음을 몰랐던 것뿐이라고. 그리고 그 길은 결국 예루살렘으로, 하늘의 잔치로 이어진다고. 'Benjamin을 기억하며'의 두 진행자가 사마리아 국경길에서 한 소년의 하늘까지, 이 이야기를 이번 에피소드에서 함께 나눈다.